환율 변동이 가져오는 경제적 파급력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외환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은 국가 경제의 뿌리를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은 수출을 촉진해 단기적으로 실질 GDP를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면도 분명 있지만, 수입 물가 폭등과 교역조건 악화되기 때문에 국민총소득(GNI)은 떨어진다.
왜 이것이 치명적인 대가를 요구하는지 살펴보자면,
국민총소득(GNI)은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실제로 벌어들인 돈의 총합, 즉 생산활동을 통해 얻은 소득이다.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구매력과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쓰인다.
따라서 실질 GNI가 감소했다는 것은 명목 소득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늘었지만 환율이 상승하며 수입 물가가 치솟으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가계는 가장 먼저 외식, 레저, 문화생활과 같은 내수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다.
가계의 내수 소비가 줄어들면 자영업자와 내수 기업들의 매출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다시 고용 불안과 임금 동결로 이어져 전체 소비를 더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부르게 된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이러한 상충 관계 속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거시경제적 딜레마'에 늘 마주하게 된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곳은 통화당국인 중앙은행(한국은행)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 통로를 거쳐 국내 물가전반을 자극하게 되는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환율 전가(Pass-though effect)'라고 부른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즉각 상승하고, 이는 수입 물가와 생산자 물가를 거쳐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소비자 물가로 전이된다.
문제는 이 통화효과의 속도와 크기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환율 물가 전가도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전가 속도 또한 한층 빨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환율이 조금만 올라도 국내 물가가 순식간에 요동친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카드는 '기준금리 인상'이다.
금리를 올리면 예금, 채권 등 국내 원화 자산의 기대 수익률이 상승하여 해외로 나간 자본이 다시 들어온다.
이는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매력도를 높여 환율 상승 즉, 원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방패가 된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부작용이 있다.
고금리는 국내 가게의 대출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민간 소비를 위축시키고 기업의 설비 투자를 얼어붙게 한다.
만약 내수 경기가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든 상태에서 환율을 잡기 위해 억지로 금리를 인상한다면,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스테그플레이션: 경제는 불황인데 물가는 미친 듯이 오르는 상태
결국 중앙은행은 환율과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인상과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한 금리 인하라는 딜레마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벌이게 된다.
정부 외환당국 역시 투기세력이나 시장의 공포 심리로 인해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시장 개입하게 된다.
구두 개입을 통해 강한 시그널을 보내거나 외환보유액을 직·간접적으로 시장에 풀어 달러를 매도하고 원화를 사들인다.
여기서 한국 외환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최근의 변화가 존재하는데, 본래 한국의 외환시장은 은행 간 거래가 오후 3시 30분이면 종료되었기 때문에, 야간이나 새벽 시간대의 환율 결정권은 싱가포르 등 역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 의존했다. NDF 시장은 실물 원화의 인도 없이 차액만을 달러로 결제하는 투기적 성격이 강한 시장인데, 이로 인해 야간에 글로벌 금융 불안이 발생하면 역외 투기 세력의 공격적인 거래로 원화 가치가 과도하게 왜곡되거나 변동성이 폭증하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 2024년 7월을 기점으로 은행 간 외환시장의 마감 시간을 런던 금융시장 마감 시간에 맞춰 익일 새벽 2시까지로 연장했고, 인가받은 외국 금융기관(RFI)이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이 개혁으로 인해 '갭 변동성'이 감소되었다. 갭 변동성이란, 시장이 닫혀 있는 밤 시간 동안 글로벌 악재가 누적되었다가 다음날 아침 시장이 열리자마자 환율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시장 시간이 늘어나며 악재가 실시간으로 분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는 투기적 NDF 시장으로부터 원화가치의 주도권을 가져오고, 제도권 시장 안에서 원화가치를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방어선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환율이 폭등할 때 가장 든든한 방패 역할은 단연 '외환보유고'이다.
물론 외환보유고를 무조건 두텁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막대한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서는 시중의 원화를 거둬들이고 달러를 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중에 부족해진 원화 유동성을 조절하고 이자율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평형기금채권(일명 외평채)이나 통화안정증권을 대규모로 발행하게 된다.
이 채권들을 발행할 때 지불해야 하는 이자 비용은 고스란히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되어 세금으로 돌아온다.
즉, 과한 방패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어마어마한 액수의 기회비용과 이자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결국 환율 변동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거시경제를 유지하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장기레이스로 봐야 한다.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하고 외화 유출입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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